겨울철 아웃도어 활동, 혹은 도심 속의 혹한을 견디기 위해 우리가 입는 패딩. 그 안을 채우고 있는 '충전재(Insulation)'의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치밀하고 과학적입니다. 단순히 "따뜻하다"는 표현을 넘어, CLO 값(보온성 척도), 필 파워(Fill Power), 그리고 소수성(Hydrophobic) 가공까지. 세상의 모든 인슐레이션에 대해 테크니컬하고 깊이 있게 분석해 드립니다.
2. 인슐레이션의 기본 원리: 데드 에어(Dead Air)
모든 보온재의 기본 원리는 동일합니다. 바로 '움직이지 않는 공기층(Dead Air Space)'을 만드는 것입니다. 공기는 최고의 단열재입니다. 충전재의 미세한 섬유 가닥들이 서로 얽혀 수많은 공기 주머니를 만들고, 이 공간이 신체에서 발산되는 열을 가두어 체온을 유지합니다.
🌡️ 데드 에어(Dead Air) 보온 메커니즘
결국 "얼마나 가벼운 무게로, 얼마나 많은 공기를 가두느냐"가 기술의 핵심입니다.
3. 자연이 준 최고의 선물: 천연 다운 (Natural Down)
여전히 무게 대비 보온성(Warmth-to-Weight Ratio)에서 다운을 능가하는 소재는 없습니다. 거위(Goose)나 오리(Duck)의 가슴털인 솜털(Down Cluster)은 민들레 홀씨처럼 3차원 구조로 팽창하여 거대한 공기층을 형성합니다.
🪶 다운 클러스터 vs 합성 섬유 구조 비교
주요 스펙 및 특징
필 파워 (Fill Power, FP): 다운 1온스(28g)를 24시간 압축 후 풀었을 때 부풀어 오르는 부피(입방인치)를 의미합니다.
600-650 FP: 일반적인 양산형 패딩에 사용.
800-850 FP: 프리미엄 경량 패딩의 표준. 약 1.67 CLO/oz의 뛰어난 효율을 보입니다.
1000 FP: 극소수의 하이엔드 제품에만 쓰이는 최상급 다운.
한계: 습기에 치명적입니다. 젖으면 다운 클러스터가 뭉쳐 공기층이 사라지고 보온력을 상실합니다. 이를 보완하기 위해 DWR(발수) 처리된 하이드로포빅 다운(Hydrophobic Down)이 개발되었습니다.
3. 과학의 진화: 합성 인슐레이션 (Synthetic Insulation)
초기에는 다운의 저렴한 대용품이었으나, 지금은 습기에 강한 내구성과 통기성(Breathability)이라는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습니다. 크게 '단섬유(Short Staple)'와 '장섬유(Continuous Filament)' 구조로 나뉩니다.
① 프리마로프트 (PrimaLoft®) - 합성솜의 절대 기준
미군이 "젖어도 따뜻한 다운"을 의뢰하여 개발된 소재입니다. 가장 다운과 흡사한 구조를 가졌습니다.
PrimaLoft® Gold: 합성솜 중 최고의 보온성을 자랑합니다.
CLO Value: 약 0.92 (Dry) / 0.90 (Wet) per oz. 젖어도 98%의 보온성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강점입니다.
특징: 매우 부드럽고 압축률이 높습니다. 다만 단섬유(Short Staple) 구조라 오랜 사용이나 세탁 시 로프트가 죽을 수 있습니다.
대표 제품: Patagonia Nano Puff, Black Diamond First Light Hoody.
PrimaLoft® Gold with Cross Core™: NASA의 에어로젤(Aerogel) 기술을 결합하여 기존 골드 대비 보온성을 52%까지 끌어올린 최신 소재입니다.
② 아크테릭스 코어로프트 (Coreloft™)
아크테릭스가 개발한 독자적인 합성 충전재입니다. 크림프(Crimp, 곱슬거림) 처리된 굵은 폴리에스테르 섬유와 얇은 섬유를 혼합하여 만듭니다.
구조: 프리마로프트보다 섬유가 굵고 탄탄합니다.
CLO Value: 약 0.82 CLO/oz (일반 모델 기준).
장점: 프리마로프트보다 복원력(Resilience)이 뛰어납니다. 배낭에 눌리거나 장시간 착용해도 숨이 잘 죽지 않습니다. 통기성이 좋아 운행용(Active Insulation)으로 적합합니다.
대표 제품: Arc'teryx Atom LT/AR Hoody, Nuclei FL.
③ 폴라텍 알파 (Polartec® Alpha®) - 숨 쉬는 충전재
미 특수부대의 요구로 개발된 '액티브 인슐레이션(Active Insulation)'의 시초입니다.
구조: 샌드위치 형태가 아닌, 격자무늬 니트 구조에 솜이 붙어 있는 형태입니다. 이로 인해 안감을 생략하거나 메쉬를 사용하여 획기적인 통기성을 확보했습니다.
특징: 정적인 보온력보다는 움직일 때 과열을 방지하고 땀을 배출하는 데 특화되었습니다. 무게 대비 보온성은 다운이나 프리마로프트보다 낮지만, '입고 뛰는' 용도로는 최고입니다.
대표 제품: Mammut Eigerjoch IN Hybrid, Norrona Lofoten Alpha.
④ 클라이마쉴드 (Climashield®) - 내구왕
미군 피복 시스템(PCU)에 채택된 연속 섬유(Continuous Filament) 인슐레이션입니다.
구조: 국수 가락처럼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긴 섬유로 되어 있습니다.
장점: '퀼팅(Quilting, 누빔)'이 필요 없습니다. 솜이 뭉치거나 이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. 수천 번 압축해도 형태가 유지되는, 현존 최고의 내구성을 가집니다.
CLO Value:Climashield APEX 기준 약 0.82 CLO/oz. (프리마로프트 골드보다 약간 낮지만 시간이 지나도 이 값을 유지합니다.)
대표 제품: Arc'teryx Dually Belay Parka (과거 모델), 각종 MYOG(자작) 퀼트 장비.
⑤ 3M 신슐레이트 (Thinsulate™)
"Thin(얇은) + Insulate(단열하다)"의 합성어. 얇은 두께로 보온을 내기 위해 개발되었습니다.
Featherless: 최근에는 다운의 구조를 모방한 Featherless 라인업(700필파워 상당)이 나와 몽클레르 등 패션 브랜드부터 아웃도어까지 폭넓게 쓰입니다. 미세 섬유가 촘촘하여 방풍성이 뛰어납니다.
4. 테크니컬 요약 비교 (Technical Comparison)
소재 (Material)
유형 (Type)
CLO/oz (Dry)
CLO/oz (Wet)
주요 특징
추천 활동
800+ 100% Goose Down
천연
~1.68
~0.00 (Loss)
압도적 보온성, 초경량, 높은 압축률
혹한기 캠핑, 비박, 정적인 보온
PrimaLoft® Gold
합성 (단섬유)
0.92
0.90
젖어도 따뜻함, 부드러운 터치
습한 날씨의 등반, 일반적인 산행
Climashield® APEX
합성 (장섬유)
0.82
0.80
최고의 내구성, 퀼팅 불필요
장기 원정, 잦은 세탁이 필요한 환경
Arc'teryx Coreloft™
합성 (혼합)
0.82
0.80
뛰어난 복원력, 적절한 통기성
올라운드 미드레이어, 운행 및 휴식
Polartec® Alpha®
합성 (니트)
~0.38*
N/A
극강의 통기성, 속건성
고강도 유산소 운동 (트레일러닝, 백컨트리)
(주: Polartec Alpha는 두께와 밀도에 따라 CLO 값이 상이하며, 수치보다는 통기성이 핵심 지표입니다.)
📊 보온성 vs 통기성 포지셔닝 맵 (Performance Spectrum)
5. 결론: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?
무조건 따뜻하고 가벼운 것이 최고라면? → 고민 없이 800필파워 이상의 구스 다운을 선택하세요.
비나 눈이 오는 날씨, 혹은 땀을 많이 흘린다면? → PrimaLoft Gold가 최고의 보험입니다.
배낭에 마구 쑤셔 넣고 거칠게 다룬다면? → Coreloft나 Climashield 제품이 오래갑니다.
입고 계속 뛰거나 산을 오른다면? → Polartec Alpha 입고 벗을 필요 없는 쾌적함을 줍니다.